김우진의 동물


최가정(홍익대, 미학전공)

 

플라스틱 의자


어렸을 적 꿈이 동물사육사였다는 김우진은 꿈과 소망들과 같은 이야기를 플라스틱 의자로 표현한다. 김우진이 사용하는 재료인 플라스틱은 쉽게 조작할 수 있고 비중이 작으며 거의 부식하지 않기 때문에 금속, 나무, 유리 대신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 플라스틱은 튼튼하고 가볍고 성형 합성물에 여러 가지 안료를 혼합하여 어떤 색깔이든 마음대로 낼 수 도 있다. 또한 어느 정도 열만 가하면 무형의 물질로서 어떠한 물질의 모습으로도 성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라한 대체품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도 일조한 재료이다. 김우진은 이러한 플라스틱 특징이 가장 잘 나타는 원색의 플라스틱 의자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의자라는 것은 인간이 서있거나 누워 있는 자세 외에 앉는 방법을 제공하여 피로한 근육을 휴식시켜 안락한 상태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주는 도구이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 만들어진 의자는 안락한 상태를 만들어주는 도구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권위를 상징하는 귀족과 상류층에서만 사용되었다. 플라스틱 의자는 기존의 이러한 안락함이나 권위를 찾아볼 수 없다. 딱딱하고 불편한 플라스틱 의자는 대량생산된 것으로 미적인 측면보다는 기능적 측면이 강조되었다. 규격화된 제품을 기술과 기계를 사용하여 대량으로 만들어낸 의자를 김우진은 오브제로서의 선택의 의미를 넘어 오브제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하여 새로운 조형성을 탐구하였다. 

  

조각조각으로 해체된 플라스틱 의자 조각들의 조합은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그림의 형상을 연상시킨다. 피카소가 자연의 형태를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하였다면, 김우진은 분해한 플라스틱 의자 조각으로 주제의 형상을 재구성한다. 분해된 의자 조각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구축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조각조각은 연결되어 주제인 동물의 해부학적인 표현이나 동물의 얼굴, 몸통, 꼬리가 되어 견고한 윤곽선을 만들어 낸다.


  

조각의 색면


작품의 형태가 분절된 형태의 이어붙임이라면 색은 추상에 가깝다. 동물의 사실적 색과 전혀 닮아 있지 않다. 대량생산된 플라스틱 의자는 주로 빨강, 파랑, 녹색으로 제작된다. 대량생산품을 그대로 작품의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김우진의 작품에서는 빨강, 파랑, 녹색이 조화롭게 작품의 면을 채워간다. 플라스틱 의자 조각을 색면처럼 조각내고 사슴, 말, 양, 말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물로 재탄생시킨다. 빨강, 파랑, 녹색의 색들이 상징하는 열정과 지혜, 그리고 생명성은 동물의 형상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빨강과 파랑, 녹색의 플라스틱 조각이 이루어낸 원색의 동물의 형상은 산만해보이거나 동물의 형태를 인지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플라스틱 조각조각은 검정색을 부분적으로 덧칠하여 조각난 색면들이 연결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모든 조각은 검정색으로 채색이 되어 있어서 동물을 재현한 색이 아닌 원색이지만 감상자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이 검정색은 플라스틱 의자의 가벼움이나 원색의 강렬함으로 시선이 전체의 형태를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차단하였다. 원색의 색들은 작품 전체에 이어지는 검정색으로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색이였던 것처럼 조화롭게 보인다. 



동물사육사


여성 동물조각가로 알려진 데보라 버터필드(Deborah Butterfield)는 아주 어릴 적부터 말을 사랑해서 한때는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학을 공부하며 20세부터는 말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동물에 대한 관심이 작품의 주제가 되어 작업한 것이다. 김우진도 데보라 버터필드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동물사육사를 꿈꾸며 동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자신의 호기심을 이끄는 동물을 조각한다. 동물에 대한 관심을 작품의 주제로 사용하였다는 점과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은 같지만, 데보라 버터필드와는 달리 김우진은 어느 한 동물에 제한하지 않고 말, 순록, 양 등의 형태에서 그만의 생생한 물성과 미감을 표현한다. 


김우진은 플라스틱 의자의 조각들은 동물의 형상을 재현한다. 재현은 대상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내포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재현, 즉 닮음에 있어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재현 방식이 있는데, 대상의 외형적 복사를 말하는 외적 닮음과 정신적 재현인 내적 닮음이 있다. 김우진의 작품에는 외적 닮음과 내적 닮음 두 가지 모두 찾을 수 있다. 수십 개의 조각들은 동물의 해부학적인 형태에 맞게 위치를 잡으면서 동물의 형상이 작은 면들로 이어 붙여 있다. 김우진의 동물은 외형이 단순화되었지만 해부학적으로 정확하여 마치 살아서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외적으로는 단순화된 면들의 조합이지만 외적 닮음은 충분하다.  

  

하지만 외적 닮음보다는 김우진이 제작한 동물의 재현은 정신적 재현이 더 담겨있다. 김우진이 제작하는 동물은 말, 산양, 양 등 자신이 사육하고 싶은 동물이다. 내적인 닮음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하나의 동물 조각품을 완성하는 과정은 김우진에게는 동물을 사육하는 과정과 같다. 동물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사랑을 플라스틱의 조각조각으로 맞춰가는 모습은 마치 어린 시절의 꿈이 였던 동물사육사의 일과 동일시된다. 김우진이 제작하는 동물은 객관적인 동물이 아닌 김우진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기르고 싶어 했던, 현재 자신의 꿈과 소망을 담고 있는 동물인 것이다. 김우진에게는 플라스틱 의자를 조각조각으로 분해하여 동물의 형상으로 이어가는 작업과 빨강, 파랑, 녹색의 원색들을 검정색으로 이어 붙이는 작업은  자신의 소망 하나하나를 이어서 꿈을 만드는 것과 같다. 어린 시절 동물사육사의 꿈은 조각가가 된 지금 이루어 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