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묶는 사육사를 품은 박제사

- 작가의 태도와 재료가 작품의 양태가 될 때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강유진

 

 

박제, 소망에 대한 욕망의 투사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김우진은 어린 시절 동물 사육사의 꿈을 바탕으로 플라스틱 의자 조각을 활용해, , 산양, 사슴 등 자신이 사육하고 싶은 다양한 동물의 형상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동물의 외형적 유사함을 재현하고자 하는 것보다 작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동물의 인상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정서적 재현에 집중한다. 그에게 작업은 어린 시절 꿈을 해소하고 실현하는 방식 중 하나로써, 플라스틱 조각들을 가지고 동물들을 소조(조각)하는 과정은 동물을 돌보고, 키우고 싶은 작가 개인의 욕망 투사이다.

 

그 형상에서, 퍽 순진하면서도 인상주의가 제시하는 충동성도 있고, 다분히 정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김우진 작가는 기존 설치 문법을 추구하는 작가들과 달리 커다란 동물을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 조각들을 가지고 작업한다. 더불어 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몹시 솔직하고, 그 모습을 변화시킬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듯 쉴 새 없이 다작한다. 마치 박제사들이 동물을 박제하듯이, 김우진 작가는 저만의 동세와 서사를 고안하고 그에 따라 조각적 조형 문법을 플라스틱과 함께 하나하나 이어가는 조립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는 순간을 박제하여 묶어버린다.

 

일반적으로 곤충표본이나 동물박제는 고대 미라에 향유를 바르던 관습을 그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표본과 박제는 전획/기념조각(예술품)’적 성격을 동시에 드러내는 복합체로 바라볼 수 있다. 기존 작업에서 표본 혹은 박제의 기능적 특질을 변화시킨 경험은 그 자체로도 작품 안에서 큰 성과를 낳았지만, 이는 작가에게 새로운 창작을 위한 전환점이 됐다는 지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완전한 죽음, 제한적인 영원성에 대항하려는 김우진의 세계관은 상태 그대로의 것인, 물질적으로 불멸한 상태에 작품을 종속시켰다. 작가는 그리하여 단순히 동물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원에 관한 기본적 욕망을 충족시킨다. 즉 작가의 태도는 곧 작품의 양태가 되는 것이다. 작가가 취했던 자세는 시간의 흐름을 막은 방어가 되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시간의 승리가 되기도 한다. 그 태도와 양태는 우리의 일상에서 대량생산되어 일회적이고, 임시적이며 가벼운 물건들의 값싼 재료인 플라스틱으로 표현된다. 작가의 작품에서 인상 깊은 특징 중에 하나는 작품에 쓰는 재료, 플라스틱을 통해 생각형태를 수집하고 박제하여 그가 만드는 동물들에게 영원한 시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새로운매체 실험

 

많은 이들이 가진 현대미술에 대한 편견 중 하나는 남들이 사용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비미술적 재료를 절묘한 맥락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 재료의 특권적 지위는 곧바로 미니멀리즘을 비롯한 1960년대의 다양한 예술실험들에서 한계를 드러냈고, 1970~80년대의 여러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의 흐름을 거쳐 변화하게 됐다. 1990년대 초반에 이르면 그 실험성은 마케팅의 논리에 포섭되기도 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 디지털아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시각예술의 물리적 매체는 광학적 미디어로 그 시선을 달리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0년대의 오늘날 회화와 조각 등 상대적으로 오랜 방식으로 작업을 다루는 작가들은 몇몇 새로운 돌파구를 개척해 유구한 실험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의 현대미술의 진짜 실험성은 어디에 있을까? 실험성은 이미 재료의 역사적 흐름을 넘어 필요에 따라 다양한 미디엄을 수용 및 재조합하는 일련의 과정에 깃든다. 모더니즘에서 특권적 미술의 미디엄으로 간주됐던 캔버스 그림과 브론즈 조각 등은 기술발달의 흐름에 따라 매체적 권역이 해체된 상황의 예술영역 안에서 미학적 재맥락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특히 과거에 숭고한 예술의 소재로 인식되지 못한 플라스틱이나 공업매체들, 공산품 오브제들은 매체 자체의 역사에서 자본주의 등 20세기의 역사성과 상징을 담아냈다. 바로 김우진이 주로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90년대 이후 새로운 기술적 비약이 이루어졌다. 플라스틱은 전통적이고 자연적 소재인 돌과 나무처럼 고유한 성질이 연구되었고, 활기차게 그 가공법이 개발되었다. 플라스틱이 가지는 뛰어난 성형성과 신축성은 오늘날 현대미술의 대표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재의 감각적 차원을 보여준다. 이러한 감각적 차원은 전과는 다르게 변화된 재질이나 화려한 색상만이 아닌, 여러 맥락들을 중첩시키며 새로운 감성적 효과를 수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사물이나 공간의 물성, 아우라만으로 온전한 예술성을 드러내기 힘든 시대에서 김우진 작가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매체적 실험들을 진행한다. 먼저 형상의 구성에서 플라스틱 모듈을 추상적으로 뒤섞는 조합실험을 통해, 플라스틱 특유의 물성 안에 동물의 형상을 붙잡아 놓는다. 그가 활용하는 모듈과 조립의 구조는 다양한 형태적 변화와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두번째는 이러한 복잡한 구조들 사이에 타블로 형식을 활용하며 각각의 모듈 사이에 연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연결성은 회화조각이라는 고전적 장르의 한계를 넘나든다. 이러한 매체의 실험들은 작품의 내용과 맥락의 변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으며, 향후 작품의 발전선상에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시간을 묶을 수 있는 특별한 재료

 

김우진이 플라스틱 사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는 바로 색상과 기법에서 오는 미적 효과이다. 플라스틱 모듈 위에 입혀진 색채의 표현적 특성은 관람객에게 동물의 외형보다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이런 효과와 작가의 주제는 우아하게 충돌하고, 김우진은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때를 채집해 고정시킨다. 생명동물, 곤충, 인간 등으로부터의 예술 연구를 인식하여 수집된 다른 작품들의 공통성처럼 작품에 표현된 동물의 모습은 박제나 표본을 목적으로 잡혀진 듯 한 동물의 단면, 도식화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유령 같은 존재로 침묵하는 색색이 화려한 동물은 박제된 상태로 숨을 잠시 멈춘 뒤, 그저 보존되어 형태만이 남은 육체 주위를 동물의 초현실적 이미지와 감수성이 빙빙 떠돌아다닌다.

 

이렇듯 인지와 시각의 전통 안에서 색채는 강한 인상-이미지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에서 작가의 감각으로 선택된 색면들과 플라스틱 성형 후에 실시되는 검정 도색 스크래치는 회화적인 그라타주나 마티에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조각 위에 회화적 특성을 덧입힌다. 그리고 관객의 시선은 색에 주목한 이후 각각의 붓터치와 색상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따라 나와 또 다른 조형성을 발견하게 한다.

 

플라스틱의 성형(조형)에서 느껴지는 조형미는 예술적인 면을 더욱 드러낸다. 미술 조형의 영역에 플라스틱이 활용되었을 초기에는 플라스틱 자체의 물성보다 기존 재료에 비해 대량 생산에 적합하고 경제적으로 우수한 효율성이 강조되었다. 플라스틱은 자유로운 조형이 가능해진 이후 자체의 색상과 질감보단 브론즈 주물 혹은 돌인 것처럼 다양한 특질로 성형되기도 했다. 미술가와 디자이너들은 플라스틱 물성 연구에 집중했다. 이러한 유기적인 성형에 의한 플라스틱은 점차 분야를 넓혀 하나의 예술 소품에서부터 건물의 파사드 등으로, 넓은 분야에까지 자유롭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공간 안에서 플라스틱이 성형에 의해 자유로운 형태로 쓰이는 경우, 하나의 힘 있는 설치물이 되어 감각적인 조형미를 표현하게 된다. 김우진 작가는 바로 이러한 특성들을 적극 활용한다.

 

 

버려진 왕좌 그리고 작은 대관식

 

이번 개인전에 처음 공개하는 <버려진 왕좌>(2016)를 출발점으로, 작가는 플라스틱의 새로운 느낌을 묘사한다. 표현적 실험을 위해 작가는 작품을 불에 그을리길 마다하지 않는다. 검은 대리석으로 좌대를 제작하고, 그 위에 분출하는 에너지를 물화시킨 형태의 색상별로 녹아내린 황소 두상을 조각해 올려놓았다. 불에 그을린 플라스틱 작품은 흡사 폼페이나 정지된 세계로 연결되는 관문인 것처럼 독해되는데, 작가 또한 이를 제 작업 세계를 변환점으로 소개하는 관문으로 삼아 이야기도 한다. <평범한 왕좌>(2016)는 그간의 작업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기념비적 형태로 상당히 견고해 작가에게 전에 없던 변화를 던져준 작업이다. 플라스틱 조각을 통해 탐미적으로 재구성된 동물의 몸체와 그 에너지를 도해하는 초현실적 이미지를 전시장에서 이리저리 변주하던 작가는, 구상과 추상, 표면의 회화성과 탄탄한 건축적 구조, 이 모든 양태를 아우르는 레이어의 공간을 구현해낸다.